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나의 자궁, 나의 것-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검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보건복지부의 시행 개정안 및 낙태죄를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1

보건복지부가 불법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 수술)을 한 의료인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입법예고를 내놓았다가 여론의 반발로 지난 17일 결국 사실상 철회했다. 이번 논란은 오히려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한 '낙태죄' 폐지운동을 부각시켰다. 

정부(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3일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하는 의료인의 자격정지 기간을 최대 12개월로 늘리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서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항목은 총 8가지로, 그 중에는 '모자보건법을 위반해 시행된 인공임신중절수술'이 포함됐다.

물론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산부에게 유전성 질환이 있거나 강간 또는 근친상간으로 임신한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낙태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성년자나 미혼 여성의 낙태 등은 불법으로 규정돼 있어, 원칙적으로 의사는 이런 임산부에게 낙태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불법적 낙태 수술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수의 산부인과에서는 불법 낙태 수술이 암암리 행해져 왔을 뿐 아니라, 그동안은 적발이 되더라도 현행법상 처벌 규정에 따라 1개월 이하의 의사 면허 정지 처분을 하는데 그쳐 제대로 된 제재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 산부인과 의사들 "처벌? 그럼 '불법' 낙태 시술 아예 안 하겠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이번 의료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은 불법 낙태 시술을 한 의사에게 최대 12개월까지 의사 면허를 정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비도덕적 진료행위’라는 이유에서 처벌을 강화해 암암리 행해지는 불법 낙태 시술을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낙태를 무조건 막는 것보다는 산모와 태아 모두를 위한 환경이 마련돼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무엇보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현실성이 없는 개정안"이라며 거센 반발을 하고 나서는 상황이라 이번 입법예고로 인한 갈등 사태는 점점 더 거세질 전망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처벌을 강화하면 미성년자들의 출산 등에 따라 사회적인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며 "보건복지부는 아직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의사들이 전부 낙태를 하지 않으려 할 경우 초래되는 사회적 혼란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반문하며 "이번 개정안에서 낙태 관련 조항을 뺄 때까지 모든 낙태 시술을 중단하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다음 달인 11월부터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힌 낙태 시술은 현행 모자보건법상 허용되는 낙태 시술을 제외한 불법 시술에 한한다. 의사들이 이처럼 현행법상 허용되는 낙태 시술까지 거부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당장 내달부터 그동안 암암리에 행해지던 불법 낙태 시술을 전면 거부할 경우에는 미성년자 미혼모들이 양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등의 큰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다.

A 대학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A씨는 "제재를 더 강하게 한다고 하면 의사들은 낙태 시술을 더 이상 안 하려고 할 것"이라며 "의사들이 시술을 거부하면 결국 그에 따른 피해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임산부와 뱃속의 태아가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에도 예외 사유가 아닌 낙태들은 모두 불법이었는데, 단지 의사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30년 이상 산과(産科) 진료를 해 온 산부인과 전문의 B씨 역시 "지금까지 의사들이 불법인줄 몰라서 낙태 수술을 해 왔던 것이 아니다"며 "실제 진료를 해보면 정말 안타까운 상황에서 피치 못해 낙태를 하는 임산부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작정 낙태를 하지 말고 애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입법을 하는 입법자들은 이런 법안을 만들면 그 뿐이지만, 그로 인해 태어난 아이와 그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생각을 안 한 것 같다"며 정부의 입법개정안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 보건복지부 "비도적적 진료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필요했다"

입법예고 후 논란이 일자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입법예고는 기존의 비도적적 진료행위 유형을 더 구체화한 것일 뿐이다"며 "낙태죄도 기존부터 불법행위로 규정돼 왔지만 그에 대한 처벌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아 처벌을 강화하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래 모자보건법상 예외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낙태를 집도한 의사는 1개월 이내의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이는 형법상의 처벌 규정에 따른 것이었다. 정부가 이를 사실상 최대 12개월로 늘려 처벌이 강화될 수 있는 입법안을 내놓았던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낙태 수술을 집도한 의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던 의료법 시행령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향후 의료계와 관련 의견 수렴을 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