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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순·유영철 '살인 연습'…생매장해도 "집유" 풀어준 이 범죄[별★판결]

별난 판결, 화제가 된 판결을 전해드립니다.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2020년 'N번방 사건'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성 착취물을 공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그로부터 불과 1년 뒤 '동물판 N번방'이 터졌다. 동물학대범들은 '고어전문방'이라는 이름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동물을 학대하는 영상과 사진을 공유했다.

행동대장을 맡았던 A씨는 길고양이를 주요 목표로 삼았다. A씨는 2020년 충북 영동에서 길고양이에게 화살을 쏘고 촬영한 뒤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했다. 같은 해 충남 태안군 자신의 집 인근 마당에선 고양이를 포획 틀로 유인한 뒤 감금하는 등 학대하고 그해 9월쯤에는 토끼의 신체 부위를 훼손하고 죽인 것으로 조사됐다.

채팅방 멤버들은 "동물은 죽이기도 더 쉽고 숨기기도 쉽고 큰 벌도 안 받는다"며 사법기관을 조롱했다. 그들의 말대로 A씨는 처벌을 거의 면할 뻔했다. 1심 재판부에서 징역 4개월·벌금 100만원에 집행유예 2년이 나왔다. 항소심 재판부가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8개월과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지 않았다면 A씨는 징역살이를 피할 수 있었다. 대법원은 올 1월 항소심 선고를 그대로 확정했다.

동물학대 예방과 반려동물 관리 강화를 뼈대로 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시행 1년에 접어들었지만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처벌이 여전히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개정된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동물을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지만 실제 재판에서 동물학대 범죄의 형량을 정할 양형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반려견 생매장…제주는 징역형 집행유예, 부산은 벌금 200만원


재판부에 따라 비슷한 사건에서 형량이 널뛰기인 사례는 '동물판 N번방' 사건 외에도 허다하다. 제주지법 형사1단독 오지애 판사는 반려견을 산 채로 땅에 묻은 30대 여성과 범행에 가담한 40대 남성에게 지난해 각각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반려견은 지나가던 행인에게 구조돼 새 주인에게 분양됐다. 반면 부산지법 서부지원은 10년 넘게 키운 반려견이 늙고 병 들었는데 치료비가 없다는 이유로 살아있는 상태에서 주택가 공터에 생매장해 죽게 한 동물학대범에 대해 2021년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의 한주현 변호사는 "동물학대 사건에 대한 대법원 양형기준이 없어서 객관적으로 적정한 양형 수준이라는 게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사건을 담당하는 수사관이나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처벌 여부와 수위가 들쑥날쑥하다"고 말했다.

'널뛰기 판결' 이전에 처벌 수위 자체가 낮아 동물학대 범죄 예방효과가 미진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동물을 학대하다 적발되면 '벌금 내고 말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얘기다.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처벌 수준이 약하다 보니 경각심을 가지기는커녕 동물 학대를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와 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 3월까지 5년 동안 동물학대 범죄로 구속 기소된 사람은 전체 학대 혐의자 4221명 중 0.1%(4명)에 그친다. 대다수 사건은 불기소(46.6%)되거나 약식명령 처분(32.5%)을 받았다. 정식재판을 받은 122명(2.9%) 중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19명(5.5%)에 불과하다. 절반 이상은 벌금형(56.9%)이나 벌금형 집행유예(3.2%)를 처분을 받았다.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강호순·유영철도 연쇄살인 전 동물 상대 예비연습


전문가들은 동물학대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보다 약한 대상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처음에는 동물을 타깃으로 삼지만 나중에는 사람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흉악범죄나 연쇄살인을 저지른 범죄자 중에선 실제로 동물학대 전력이 있는 사람이 적잖다. 폭력성이 사람에게 표출되기에 앞서 동물을 대상으로 먼저 발현되는 경우다. 미국 FBI(연방수사국)는 동물학대 범죄를 주요 강력 범죄의 전조증상으로 본다.

8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운영하던 개 사육장에서 개를 잔혹하게 도살하는 등 동물학대 범죄를 저질렀다. 21명을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인 연쇄살인범 유영철도 어릴 때 동물을 학대했고 첫 살인 범행 직전 개를 상대로 연습을 했다고 진술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오는 6월부터 동물학대범죄 양형기준 신설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한 것은 그래서 주목할만한 소식이다. 양형기준이란 일선 판사들이 판결할 때 참고하는 일종의 지침이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벗어나 판결하려면 판결문에 사유를 기재해야 하기 때문에 판결의 기준이 된다.

부산고법 울산원외재판부 유정우 부장판사는 "양형기준이 적용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징역형이 권장되는 부분이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적정한 처벌이나 동물보호 견지에서 획기적인 일이 될 수 있다"며 "형사재판이 검사의 기소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법원뿐 아니라 검찰도 신경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법학회장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바를정 김태림 변호사는 "양형기준이 대법원에서 설정되면 각각의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가 양형 기준의 큰 범위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양형이 들쭉날쭉한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원 대법원 양형위원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양형위원회 제131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양형위원회는 이날 13년 만에 사기 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을 논의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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