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왼쪽)과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강제북송' 관련 국가정보원법위반 선고공판을 마치고 나서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탈북한 어민을 강제로 북송한 혐의로 기소된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1심 법원이 징역 10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다.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에게는 각각 징역 6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는 혐의가 인정되지만 그 정도가 가볍다고 판단해 2년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것이다. /사진=뉴스1

이른바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당국자들이 1심에서 선고 유예 판결을 받았다. 제도가 미흡한 측면이 있었던 만큼 일을 담당했던 개인을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취지다. 기소 2년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허경무)는 19일 국가정보원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각각 징역 10개월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각각 징역 6개월의 선고유예가 내려졌다.

선고유예란 범죄 정황이 경미한 경우 유죄 판단은 하지만 선고를 미뤄 실제 처벌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처분이다. 선고유예는 형을 선고한 후 집행 자체를 미루는 집행 유예와 달리, 2년이 지나면 형 선고의 효력을 잃은 것으로 간주(면소)한다.

재판 과정에서 정 전 실장 등은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검찰이 수사 및 기소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이 이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의도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이 사건을 재판에 넘긴 것을 공소 남용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정 전 실장 등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했다. 탈북어민을 강제로 북한에 돌려보낸 행위가 법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흉악범이라는 전제로 단기간 만에 북송시켜 사회로부터 격리할 경우 기본권 침해가 우려된다"며 "추방에 가까운 송환이었다"고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정 전 실장 등에게 선고유예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하는 시대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처음 분단 이후 형성된 대결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나라 대부분 제도가 구축됐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에 적용할 법률, 지침 등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사정들은 피고인들이 속한 정권(문재인 전 정부)뿐 아니라 현 정권(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라며 "결국 이 사건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고인들과 같은 결정 혹은 반대되는 결정은 결과적으로 다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한민국 법질서 속 모순과 공백 메우는 게 가장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보인다"며 "제도 개선이 우선임에도 그것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일을 담당한 사람만을 처벌하는 게 옳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다"고 덧붙였다.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이란 2019년 11월 문재인 전 정부 당시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군에 나포된 탈북어민 2명을 강제로 북한으로 돌려보낸 일이다. 해당 어민들은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부는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며 닷새 만에 이들을 북송했다.

사건 발생 3년 후인 2022년 7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국가정보원과 NKDB 인권침해지원센터가 서 전 원장 등을 고발하자 검찰은 이듬해 2월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탈북어민들이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정 전 실장 등이 북한 송환을 추진하면서 관계기관 공무원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켰고 이 과정에서 서 전 원장 등이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거나 정보조사를 방해했다고 봤다.

재판이 끝난 후 정 전 실장 등의 변호인단은 입장문을 통해 "2022년 새 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의 공개적 수사 지침에 따라 국정원이 부당하게 고발하고 이를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하여 이번 재판이 지난 2년 넘게 진행됐다"며 "이번 재판을 계기로 지난 정부가 국익과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내린 정책적 판단들을 이념적 잣대로 접근해 사법적 절차로 재단하려는 잘못된 관행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