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삼부토건 본사 / 사진=뉴스1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도주한 이기훈 삼부토건 부회장 및 웰바이오텍 회장에 대해 수사당국이 대대적 추적에 나섰다. 이 부회장은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의 핵심 피의자 중 한명이다.

이 부회장이 경남 남부 지역을 거쳐 선박을 이용해 해외로 밀항을 시도했거나 시도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해양경찰은 취약 항포구에 24시간 감시망을 구축하는 등 도주 차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 오정희 특검보는 22일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웨스트에서 정례 브리핑에서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도주한 이 부회장에 대해 새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며 "검거팀을 구성해 경찰의 협조를 얻어 신속히 검거할 것"이라고 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를 받는 이 부회장은 지난 17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잠적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에 대해 A급 지명수배를 내리고 다음 날인 18일 오후 10시쯤 "이 부회장이 경남 한 도시로 이동해 밀항을 준비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해 해경에 협조를 요청했다.

해경은 즉각 가용 인력을 총동원해 이 부회장의 해상 도주로로 지목된 남해안 일대 항·포구에 대한 전방위 잠복 감시에 돌입했다. 특히 남해안 일대에 외지고 소형 선박의 입출항이 잦은 '밀항 취약지'에 형사·정보 요원을 긴급 배치해 24시간 교대 근무를 이어가고 있다. 현장 요원들은 차량에서 쪽잠을 자며 선박 위치추적 장치(V-PASS)와 자동 선박식별 장치(AIS) 데이터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낚시어선·레저 보트 임차 내역까지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수사당국은 이 부회장의 도주 경로로 크게 두 갈래를 점치고 있다. 하나는 남해안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소형 선박 루트다. 또 다른 하나는 서해를 통한 중국행이다. 남해상에서 제3의 어선으로 갈아타 곧바로 동남아로 도주하는 방법도 거론되지만 난이도가 높다.

수사당국은 이 부회장이 아직 한국을 떠나지 못했을 것을 가정하고 수색 중이다. 수사당국 관계자는 "전국 해역에 촘촘한 AIS 감시망과 출입항 통제가 가동 중이라서 영화에서처럼 밀항이 쉬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과거 밀항을 알선하던 지역 브로커들 상당수가 현재 70~80대의 고령이거나 사망해 조직적인 밀항 지원책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한다.

이 부회장은 삼부토건 현 경영진이 옛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인물로 삼부토건의 '그림자 실세'로 불린다.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은 김 여사가 깊숙이 연루됐다는 의혹과 정황이 있어 특검팀이 수사 초기부터 공을 들이고 있는 사건이다.

코스닥 상장사 웰바이오텍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이 부회장은 과거에도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09년 2월쯤 코스닥 기업 이앤텍의 실질 사주로 있으면서 인도네시아 금광 개발을 명목으로 세븐에너지스틸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공시해 주가를 끌어올린 뒤 자신이 보유한 지분을 전량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앤텍은 같은 해 6월 해당 사업이 무산되자 뒤늦게 계약 해지 사실을 공시했다. 이에 이앤텍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이후 이 부회장은 이듬해 회삿돈 약 58억9500만원을 횡령하고 35억원대의 배임을 저지른 혐의로 구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