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광길 변호사(오른쪽 두번째)와 개성공단 기업 비대위는 지난 9일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 헌법소헌을 청구했다. |
개성공단이 문 닫은 지 3개월이 흘렀다. 지난 2월10일, 누군가에게는 매일 출근하던 직장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은 날이고 누군가에게는 수십 년을 피땀 흘려 일군 회사가 하루아침에 들어가 보지도 못할 곳이 된 날이다.
개성공단 폐쇄 90일을 앞두고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헌법재판소에 손을 내밀었다.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지난 9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가 적법한 절차대로 이뤄진 것인지 헌법재판소가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번 소송에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108곳, 개성공단에 영업소를 둔 37곳, 협력업체 18곳 등 163개 기업이 참여했다.
"전쟁이 나도 국민 권리 제한할 땐 법대로 합니다"
"우리가 헌재에 묻는 것은 '헌법상 이런 절차가 가능한 것인가'에요. 우리가 정부의 정치적 판단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를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절차적 정당성을 묻는 겁니다. 행정부의 행위는 법률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 거니까요."
비대위의 헌법소원을 대리한 김광길 변호사는 이번 헌법소원의 취지로 '적법절차의 원칙'을 말했다. 다만 이번 청구는 "정부의 조치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와 형식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헌재의 판단을 구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가 국가 안보 등 공공목적을 위해 필요한 조치였는지 등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어떠했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적법절차의 원리는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 반드시 적법한 절차와 국회가 정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헌법 12조는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안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판례들을 보면 헌법 12조는 단지 체포나 구속할 때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모든 행정 절차에 적용된다고 밝히고 있어요. 모든 행정 절차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죠. 적용 가능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이 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모두 포함된 내용이에요."
이는 국가와 정부가 '긴급한 사안'이라고 판단하더라도 해당이 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대통령은 긴급한 상황에서 긴급히 결정을 할 수 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긴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헌법의 절차를 준수해야죠.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긴급 상황에서도 행정 절차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은 헌법에 나와있어요."
헌법 76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1항)'.
또 국가 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전상태에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가 불가능한 때에 한해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2항). 하지만 이같은 처분 또는 명령을 했을 때는 지체없이 국회에 보고해 승인을 얻어야 한다(3항). 만약 국회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면 그 처분 또는 명령은 효력을 상실한다(4항).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국회가 만든 법에 따라야죠. 헌법은 법을 만들 수 없는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선처분할 수는 있지만 사후적으로라도 국회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어요. 하지만 개성공단 폐쇄 후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대해서도 정부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고만 말을 했어요. 중대한 법치주의를 위반한 것 아닙니까."
"헌법 23조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정부 조치에 의해 당장 생계가 막힌 이들이다. 정부의 재산권 침해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안건일 수 밖에 없다.
"해당 기업들은 개성에 전 재산을 두고 왔어요. 법은 정부가 재산을 수용할 때는 절차에 따라야 하고,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정해놓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정당한 보상이 이뤄졌나요."
헌법 23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되고 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
"정부가 어떤 법적 근거에 따라 조치를 한 것인지 알려줘야 기업 쪽에서도 이해를 하거나 대응을 할텐데 지금은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에요. 하물며 전쟁 등 위급한 상황에서 적용되는 징발법에도 보상에 대한 부분을 정해놓고 있어요."
징발법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하에서 군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토지, 물자, 시설 또는 권리의 징발과 그 보상에 관한 사항'을 정해놓은 법이다. 국가가 비상사태에 개인의 재산을 징발해 사용했을 때는 정당한 대가를 보상해야 하고, 사용료를 지급해야 한다(19조).
"절차대로 진행이 됐다면 설사 보상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기업들 입장에서 납득은 할 수 있었을 거에요. 이게 민주주의죠. 하지만 아무런 절차도 과정도 없었어요. 헌재에 판단을 구하는 것은 돈을 물어내라거나 조치를 취소해 달라는게 아니에요. 아무런 절차도 없이 행해진 2·10 조치, 절차를 어겨 재산권을 제한하는 조치 모두 위헌이라는 것을 사법부가 판단해 달라는 거죠."
"법적 절차 없던 조치…특별법으로 보상해줘야"
 |
"사건이 발생하고 90일 이내에 헌법소원을 청구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청구를 한 것이에요. 최후의 구제 수단으로요.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은 하고 있어요. 다만 헌재가 기업의 다급한 사정을 이해해 시기를 잘 혜량해 주길 바랄 뿐이죠.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보상해주는 방식을 기대하고 있어요. 정부는 (보상을) 법적 근거가 없어서 못해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조치는 어떤 법적 근거가 있었나요. 우리가 법치국가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겁니다."
시간이 갈수록 개성공단 기업들은 어려워지고 있다. 임기응변으로 수습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자금 압박은 커지고 기업들은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개성공단 문제는 단지 개성공단 입주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개성공단에는 하청업체가 많아요. 이들에게 일을 맡긴 원청 기업 중에는 대기업이 많고요. 지금 상황을 바라보는 외국 주주들, 외국 바이어들은 한국을 어떻게 생각을 할까요. 사업은 결국 신뢰의 문제 아닌가요. 법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어떻게 한국에 투자를 하겠어요."
기업들이 원하는 것은 '정당한 보상'이다. 정부는 구체적인 피해실태 조사 후 보상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조차 쉽게 해결이 나진 않을 것이라는 게 김 변호사의 생각이다.
"피해가 얼마나 났는지 입증을 해야 하는데 물건이며 서류는 대부분 개성에 있죠. 실사가 불가능해요. 부동산 건물 공장 등의 값은 어떻게 계산을 할 것인지부터 피해를 얼마나 증빙 가능한지까지 쉽지 않을겁니다."
"9년을 머물렀던 개성공단…북한 변하고 있었다"
김 변호사는 개성공단이 문을 연 2004년부터 2013년2월까지 개성공단관리위원회 법무팀장으로 일했다. 10년 가까운 시간을 개성공단에서 지냈다. 북측과 이견이 있을 때마다 했던 말이 '법대로 하자'였다.
"우리의 가장 큰 경쟁력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고 생각해요. 과거 북한이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려고 할 때 우리가 요구했던 것이 '법대로 하자'는 것이었어요. 재산권 보장의 합의를 지키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를 우리 스스로 위반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북한 사람들을 변화시킬 것이며 북한에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개성공단의 의미는 단지 '정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였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의 가장 큰 의미는 북한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거였어요. 개성공단에 처음 갔을 때와 나올 때 변화가 눈에 보였어요. 사람들 모습부터 생각까지 정말 많이 변했죠. 북한 입장에서 처음 개성공단을 만들 때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하지만 교류를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되고 경험을 통해 시장경제를 조금씩 발전해 나가며 외국과 합작 투자의 기회를 갖고 그러면서 사고도 말랑말랑해지는 거죠.
북쪽에 핵에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발전과 문화·정치·법치 발전에 미래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도록 해줘야해요. 중국을 봐요. 2000년대 초반까지 공개총살을 했다고 해요. 외국과 교류를 통해 인식이 바뀌고 사법시스템이 발전해가면서 안보에 대한 위협도 감소하고 있잖아요."
북한의 산업화에 대해 일부는 '돈을 벌면 다 핵무기 개발에 들어간다'고 반대한다. 김 변호사는 '역설'이라고 말한다.
"물론 비핵화를 위해 협상하고 노력해야죠. 하지만 일정한 산업화가 이뤄져야 민주화가 진행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경험입니다. 북한도 이렇게 가야죠. 산업화의 기반도 만들어주지 않고 인권신장과 법치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죠."
김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북한 사람들에게 이 말은 많이 했었어요. 개성공단은 동태가 아니다. 얼렸다 풀렸다 할 수 있는게 아니다. 한 번 얼리면 죽는 생명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