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이 엘리베이터에서 여성을 향해 자신의 성기를 노출해 만지는 행동을 한 남성을 강제추행죄로 판단한 사례(2011도7164)가 있었다. 당시 판결로 신체접촉이 없이도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인정되는 강제추행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하게 신체 접촉이 없이 바지를 벗어 성기를 노출한 비슷한 사례에서 강제추행죄가 아니라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2011도8805)도 있어 비교해볼 만 하다.

A씨(여)와 B씨(남)는 같은 건물 1층과 2층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웃이었지만, 일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생면부지의 사이였다. 그러던 중 저녁 8시경 1층 자신의 식당에서 지인과 술을 마시다 A씨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를 들은 B씨는, 때마침 지나가던 A씨에게 주정을 하며 말을 걸었다.

하지만 A씨는 그런 B씨의 말을 무시한 채 식당 앞 도로에 주차해 둔 자신의 차량 쪽으로 계속 걸어갔고, 이에 화가 난 B씨는 A씨의 뒤를 쫓아가며 욕을 하며 바지를 벗어 A씨에게 자신의 성기를 보였다. 당시 이들의 건물은 골목길에 위치하기는 했지만 식당과 편의점 등이 있어 그 시간에도 사람과 차량의 왕래가 빈번한 도로였다.

검찰은 여성인 A씨 앞에서 바지를 내려 성기를 노출한 B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의 행동을 강제추행이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형법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를 강제추행죄로 벌할 것을 정한다"며 "강제추행죄는 개인의 성적 자유라는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죄로, 형법에서의 '추행'이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행위의 상대방인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B씨의 성기 노출에 피해자 A씨의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가 침해받았는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재판부는 형법상 공연음란죄의 '음란한 행위'나 과다노출에 관한 경범죄처벌법상의 행위가 특정한 사람을 상대로 행해졌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에 대한 추행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봤다. 피해자의 성적자유 침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강제추행 여부는 피해자의 의사·성별·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관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구체적 행위태양, 주위의 객관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정해진다"면서 "구체적으로 B씨는 A씨와 일정한 거리를 둔 상태에서 자신의 성기를 꺼내보였을 뿐 A씨에게 어떠한 신체적 접촉도 하지 않았고, 그 장소 역시 사람과 차량의 왕래가 잦은 공개된 도로변이었기 때문에 A씨는 곧바로 B씨로부터 시선을 돌려 그의 행위를 쉽게 외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주위의 도움을 청하는 것도 가능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구체적인 상황을 따져 단순히 B씨가 바지를 벗어 A씨에게 자신의 성기를 보여준 것이 비록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B씨가 폭행 또는 협박으로 A씨를 추행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봤다.

◇ 판결팁= 가해자가 피해자의 신체에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았는데도 가해자에게 강제추행죄가 인정된다고 본 판례에서는 가해 남성이 엘리베이터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피해 여성을 바라보고 반바지를 내린 뒤 성기를 꺼내어 잡고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는 행위를 했다.

그런데 언뜻 유사해 보이는 위 두 사례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바로 행위가 이뤄진 장소가 달랐다. 즉 '장소의 폐쇄성'이 하나는 강제추행죄를 인정하고, 다른 하나는 아니라고 본 주된 이유가 됐다.

A씨는 행위가 이뤄진 장소가 다른 사람들도 많이 돌아다니는 공개된 도로변이었기 때문에 신체적 접촉을 하지 않고 상당한 거리에서 바지를 내려 성기를 노출한 B씨의 행위를 A씨로서는 간단히 피하거나 행인들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행위를 당했다면 피해자는 이를 피할 수도,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극도로 성적 자유를 억압 받았을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이 차이 때문에 대법원은 비슷한 행위를 한 가해자에 대해 하나는 강제추행죄 유죄로, 다른 하나는 무죄로 선고했다.

◇ 관련 조항

- 형법

제245조(공연음란)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제298조(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경범죄 처벌법

제3조(경범죄의 종류)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

33. (과다노출)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