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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들에게 현직 판·검사와의 인연을 강조하지 않으면 변호사 사무실에 내방했다가도 그냥 나가버린다고 합니다. 전관효과에 대한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게 아닐까요. 현직 판검사들의 반성도 있어야겠지만 법률서비스 소비자의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서울 한 지방법원의 A부장판사의 얘기다. 법조시장 소비자가 바뀌지 않는 이상 아무리 정부나 법원차원에서 대책을 내놔봐야 백약이 무효라는 얘기다. 성문법주의가 원칙인 대한민국에서 뚜렷한 근거가 없는데도 전관을 찾는 일부 의뢰인들의 모습은 미신에 집착하는 이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게 법조계 일각의 지적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전세금이나 임대차보증금 반환소송처럼 전관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간단한 민사소송의 경우에도 전관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전관'(판·검사 경력을 가진 변호사를 지칭하는 용어)이라는 이유로 비싼 프리미엄을 붙여 수임료를 지불하는 일부 의뢰인들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전관' 프리미엄이 붙은 이들과 그렇지 않은 변호사들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종종 보인다"며 "법률서비스 시장과 변호사 업무에 대한 몰이해가 초래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전관효과가 실제로 통계 등 형식으로 검증된 바는 없다. 사건유형도 상이할 뿐더러 사선(私選) 국선(國選) 여부에 따른 변호사 승소율 통계마저도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내가 선임한 변호사가 '전관'이면 비(非)전관 변호사에 비해 뭔가 나으리라는 기대가 법조시장에 팽배해 있다는 지적이다.
노골적으로 전관을 찾는 것은 물론 비전관 변호사를 압박하는 경우도 숱하게 많다는 지적이다. 비전관인 B변호사는 "전관이 많은 대형로펌과 싸워야 하는 경우나 상대방이 전관변호사를 선임한 경우일수록 의뢰인들이 불안한 모습을 많이 보이기도 한다"며 "만약 패소를 하게 되더라도 마치 내가 전관이 아니라서 패소를 한 것처럼 생각해버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백화점과 같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점찍은 후에 보다 싼 온라인 쇼핑을 통해 구매하는 것과 같은 행태도 종종 나타난다는 지적이다. B변호사는 "소송대응 전략 등에 대한 상담은 비전관변호사에게 받고 난 후 정작 소송에 들어갈 땐 전관변호사를 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비전관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간만 보다가 결국 전관으로 가버린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전관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변호사들이 많다. 전관변호사와 일한 경력이 있는 어쏘변호사(Associate Attorney, 경력이 짧은 주니어 변호사) 중 머니투데이 더엘(The L)과 인터뷰를 한 이들은 "받아들여질 만한 의견이라면 전관변호사를 통하지 않고도 법원이 받아들인다"며 "전관을 선임했더라도 안될 일은 안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될 일은 전관을 고용하지 않더라도 되는 반면 안될 일은 전관이라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지적이다.
실체가 모호한 전관효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들은 비전관 변호사만 있는 게 아니다. 전관으로서 은퇴한지 시간이 오래 지난 이들의 경우도 무리를 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전관변호사 사무실 소속의 C변호사는 "현직에서 은퇴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소위 '끗발'이 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띈다"며 "의뢰인들도 개업한지 오래됐다고 하면 더 이상 전관효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바로 표정을 굳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C변호사는 또 "이 때문에 전관변호사는 '현직에 있는 아무개가 내 동기다' '걔는 내 연수원 후배다'라는 식으로 자신이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해보이려고 애쓴다"며 "전관들도 의뢰인 기대에 맞추기 위해 무리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전관효과를 맹신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일각에서는 법조계 안팎의 극심한 정보비대칭으로 인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인맥·지연·학연 등 법적판단과 무관한 요소들이 의뢰인에 대한 당국의 기소여부나 구형형량, 판결 등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얘기다. 사법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낳은 씁쓸한 모습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판·검사에서 은퇴한 후 변호사로 전직한 전관들이 초기에 이력관리에 나서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은퇴 후 1~2년의 기간이 향후 십여년에서 20~30년간의 변호사 생활을 좌우하는 평판을 만들기 때문이다. 평판관리를 위해 성공률이 높은 사건만 골라받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를 단선적으로 비교하다보니 생기는 오류라는 얘기다.
A부장판사는 "전관들이 변호사 개업초기 맡는 사건은 주로 승소가능성이 매우 높거나 구형량을 대폭 줄이기 쉬운 경우에 국한된다"며 "평판관리를 위해 사건을 가려받는 이들(전관)과 그렇지 않은 변호사들의 승소율이나 감형성공률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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