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관련 기자회견 및 시연회에서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장이 골밀도측정기를 시연하고 있다./사진=뉴스1

최근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가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허가 주장을 공론화하며 논란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논란의 주된 요지는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되는지, △면허 외 행위라면 무조건 금지돼야 하는지, △한의사에게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역량이 있는지,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경우, 국민의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다.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허가 문제는 2011년 제18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석용 의원이 '한의약 육성법 개정안'을 내놓으며 처음 대두됐다. 당시 윤 의원은 기존 한의약 육성법 제2조 제1호에서 한의약의 정의를 '우리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있던 것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하거나 이를 현대적으로 응용·개발한 의료행위'로 수정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한의협은 "한의약의 개념을 확대해 한의약의 육성이라는 법 제정의 취지에 부합한다"며 반색했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반발했다. 

의협은 개정안이 '현대적으로 응용·개발한 의료행위'도 한의약 개념에 포함시킨 것을 두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은 현대의학과 질병에 대한 접근방식이 전혀 다르다"며 "해당 문구가 들어감으로써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이용을 부추겨 사회적 부작용을 양산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의약의 개념은 기존보다는 넓게 수정됐지만,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논란을 일으킨 '현대적'이라는 문구는 완전히 삭제된 채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행위"로 규정하는 법안이 처리됐다. 

당시 개정 논의 과정에서 국회와 정부 및 의료계와 한의계는 협의 끝에 한의약의 개념을 "한의사는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없고, 다만 레이저침 등 한의학에 기초한 기기에 대해서는 사용 근거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취지로 정리하며 의료기기 사용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 1월 12일 김필건 한의협 회장이 '복지부의 직무유기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 도중 자신부터 현대 의료기기 사용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하며, 기자들 앞에서 골밀도 측정기를 직접 시연했고, 이를 계기로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문제가 다시금 공론화됐다.

◇ 한의협 회장의 의료기기 시연…得보단 失?

기자회견에서 현대 의료기기 시연에 직접 나선 김 회장은 한의협 직원인 29세 남성을 모의환자로 해 그의 신장과 체중, 발 크기 등 수치를 초음파 방식의 골밀도 측정기에 입력한 뒤 골밀도 측정에 들어갔다. 김 회장은 측정 결과치에 대해 "모의환자는 T-값 -4.4로 골밀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 즉 골감소증"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김 회장의 진단에 의료계는 '오진'이라며 잇달아 반박에 나섰다.

김 회장의 시연 다음 날 열린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한 양규현 대한골대사학회 회장(연세대의대 정형외과학교실)은 김 회장의 골밀도 측정기 시연의 문제점들을 설명했다.

양 회장은 먼저 “골밀도 측정을 위해서는 환자의 발뒷꿈치뼈 중에서도 특정 부위를 측정해야 함에도 김 회장은 모의환자의 복숭아뼈에 초음파기기를 대고 골밀도를 측정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모의환자의 골밀도 수치로 T-값을 적용한 것도 잘못"이라며 "T-값은 50세 이상 환자를 대상으로 구해야 하며, 모의환자와 같은 20대는 표준값이 없어 Z-값을 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 회장이 골밀도측정기에 대한 지식과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후에도 의협은 김 회장의 시연을 비판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의협 페이스북 등을 통해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비난하는 게시물을 게재하는 등 여론 몰이에 나섰다.

급기야는 SNS 등을 통해 김 회장이 오진을 했다는 설명이 첨부된 시연 영상이 급속도로 퍼지며 그를 조롱하는 여론까지 형성 됐고, 결국 시연을 통해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허가 주장에 동력을 달려던 한의계는 김 회장의 오진 논란으로 상당한 역풍을 맞았다.

◇ '맞고소'로 갈등 격화된 의협-한의협

의협은 위 시연 이후 곧바로 김 회장이 의료법(제 27조 제1항) 위반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며 그를 고소했다. 그러면서 의협은 여러 차례에 걸쳐 페이스북을 통해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를 이용한 오진으로 인해 잘못된 한약을 권할 수 있습니다", "해석오류, 엉터리 진단, 잘못된 처방 등 한의사들의 치명적인 오진으로 건강도 해치고 큰 돈도 버릴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게시물을 반복적으로 게시했다.

의협의 이 같은 대처에 한의협은 시연 당시 김 회장은 검사 결과 등을 정확히 언급한 후 정확한 진단을 위해 추가검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의협 측이 김 회장과 한의사들을 흠집내기 위해 “김 회장이 오진을 했다”는 허위사실을 적시하는 등 자극적인 문구를 사용해 한의사들을 비방하고 그 명예를 훼손했다며 추무진 의협 회장을 형사 고소했다.

한편, 한의협의 명예훼손 형사 고소 소식을 접한 추 회장은 "바라던 바다. 누가 옳은지 국민 앞에서 제대로 가려보자"며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사용 문제가 국민 건강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히겠다"는 입장을 밝혀 두 직군 간의 갈등 격화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