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마 클로이버(Otmar Kloiber) 세계의사회(WMA) 사무총장이 2월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반대 관련 기자회견을 열는 모습. 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허용 여부를 두고 의료계와 한의계가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양 집단을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가 강경한 태도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그 허용 여부의 결정을 미루고 있는 복지부를 향한 한의계의 불만도 커가고 있다. 한의협은 특히 행정부인 복지부가 의료기기의 사용을 양의사들의 고유권한인 것처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정진엽 복지부 장관이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문제와 관련해 "의료기기 하나를 허가하면 또 다른 의료기기가 분쟁 대상이 될 수 있고, 그러다보면 양방의료계가 파업을 하겠다고 나설 것"이라며 "인내심을 갖고 양한방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혀 한의계의 빈축을 사고 있다.

◇ 법원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현행법상 위법"

무면허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의료법 제27조 제1항에 따라, 의료행위는 의료인이 아니면 할 수 없고, 의료인이라 하더라도 각 직종에 따라 허가된 면허의 '범위 외 행위'는 할 수 없다.

2014년 1월 대법원은 "의사나 한의사의 구체적인 의료행위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구체적 사안에 따라 사회통념에 비추어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이원적 의료체계의 입법 목적, 당해 의료행위에 관련된 법령의 규정 및 취지, 당해 의료행위의 기초가 되는 학문적 원리, 당해 의료행위의 경위·목적·태양, 의과대학 및 한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이나 국가시험 등을 통해 당해 의료행위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한다"며 기준을 제시했다.

위 대법원의 기준에 따라 같은 해 2월 대법원은 IPL로 환자를 치료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판결에선 "한의사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의료기기나 의료기술 이외에 의료공학의 발전에 따라 새로 개발·제작된 의료기기 등을 사용하는 것이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이 있는지, △개발·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한 것인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의 응용 또는 적용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아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지 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기준에 따라 재판부는 "IPL은 피부 색소침착, 여드름, 모세혈관 확장의 각 치료 및 미세한 주름제거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고, 관련 논문에 의할 때 IPL이 한방의료기관에서 사용이 허용되는 적외선치료기나 레이저침치료기와 같은 작용원리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을 두고 한의협 측은 "사법부 판단 등을 봤을 때는 의료기기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 법원은 현대의료기기 사용은 한의사의 면허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일관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06년 선고된 서울고등법원 판례는 "국내 의료체계는 이원적으로 구분돼 있고, CT와 관련된 규정들은 한의사가 CT를 이용하거나 한방병원에 CT를 설치하는 것을 예정하고 있지 않다"며 한의사가 CT를 사용해 방사선 진단행위를 위법한 것으로 봤던 바 있다.

2014년 선고된 대법원 판례는 한의사의 필러 시술도 위법하다고 봤다. 필러시술은 피부 주위에 히알루론산을 직접 주입해 시술한 부위의 피부층을 높임으로써 전체적인 얼굴 미관을 개선하려는 의료행위다. 히알루론산 역시 첨단장비를 이용해 박테리아를 발효시켜 생산하는 것으로 한약이라고 볼 수 없어 필러시술은 전적으로 서양의학의 원리에 따른 시술이라는 게 당시 재판부의 설명이었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 역시 카복시 시술, 초음파진단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한의사 2명에 대해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의료법 등 법령에서 한의사의 기복기 사용 또는 카복시 시술을 금지하는 법령은 없지만 사실관계 등에 비춰보면 한의사의 면허범위에 포함된 의료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우리 법원은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가능성을 열어두고는 있지만, 의학과 한의학이 이원화 되어 있는 현행 법 체계 하에서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로써는 '입법'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이 허용될 수 없다.

◇ 한의협 '공동 여론조사' 제안 거절한 의협…이유는?

한의협은 지난 1월 의협에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공정성과 객관성이 확보된 문항으로 대국민 설문조사를 공동으로 실시하자"고 공식 제안했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문제와 관련해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한 여론을 파악해 그 뜻에 따르자는 것으로, 공동 대국민 여론조사의 실시로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논란을 종식시키자는 의도에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의협이 "공동 여론조사를 하자는 한의협의 제안은 갑갑한 상황 타개를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며 거절 의사를 밝히며 여론조사 실시는 불가능해졌다.

의협은 "여론조사에 참여하는 국민 개개인들은 법과 의료제도에 대한 이해정도의 차이가 크고, 의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가 명확히 구분되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이중적 보건의료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부족할 것"이라며 "(여론조사를 실시하면)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으로 촉발되는 미래의 안전 이슈 보다는 당장의 편리함에 따른 인기투표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또 "(한의협의 제안은) 독도 영유권 문제를 한-일 국민들 간 설문조사로 결정하겠다고 하면 그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해당 사안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인 만큼 여론에 좌우될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