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52)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구명 로비 의혹의 핵심 인물인 최유정(47) 변호사의 사무실 앞.

최근 해외원정 도박으로 수감 중인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52)의 재판 과정에서 유명 '법조 브로커'가 관여했던 정황이 드러나면서 법조비리 문제가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반복되는 법조비리 사건의 중심에는 늘 그렇듯 법조 브로커가  있다. '브로커 없는 소송은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법조 브로커가 활개치는 것은 강한 기수문화 아래 결속된 사법시험 카르텔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 사법연수원 기수 문화 기반으로 한 고질적인 '전관예우'

네이처리퍼블릭 정 대표와 수임료 반환 문제로 갈등을 빚다 전관로비를 했던 사실이 세상에 밝혀지게 된 최유정 변호사(47·사법연수원 27기)는 지방법원 부장판사까지 지냈던 전관 출신 변호사로, 이번 사건으로 전관을 이용한 청탁을 비롯해 브로커를 통한 로비 의혹을 받고 있다.

최 변호사는 이숨투자자문 송창수(41) 대표의 사기 사건 항소심을 대리하던 지난해 9월부터 법조 브로커 A(45)씨와 교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A씨는 이숨투자자문 이사의 명함을 들고 최 변호사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검찰에 따르면 최 변호사를 위한 브로커 역할을 하기 시작한 A씨는 최 변호사가 정운호, 송창수 대표로부터 각각 50억원씩 모두 100억원의 수임료를 받도록 하는 선임을 성사시켰다. 최 변호사는 이들에게 재판부와의 친분을 과시해 사건을 수임하며 재판부와의 교제나 청탁 목적으로 거액의 수임료를 받아 변호사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14년 12월 개인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 최 변호사는 그동안 사법연수원 동기나 고교 동문 등 개인적인 연고 관계가 있는 판사들이 담당한 사건을 집중적으로 수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기존 법조인끼리의 첫 인사가 "연수원 몇 기입니다"로 시작될 정도로 기존 법조인들의 사법연수원 기수를 중심으로 한 카르텔과 전관예우는 어제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서초동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는 B변호사는 "기존 법조계는 사법연수원이라는 하나의 교육장소에서 배출된 법조인들로 구성돼 있고 이들은 사법시험 몇 회, 연수원 몇 기 출신인지에 따라 자신들만의 공고한 카르텔을 형성해 자신들만의 그릇된 권위의식을 키워 왔다"며 법조 비리 문제가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의 기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C변호사 역시 "실제 사건을 수임하는 과정에서 일부 변호사들은 의뢰인들에게 배당된 재판부 판사들과 연수원부터 막역한 사이라고 하며 전화 한 통 넣겠다고 말하는 등 절박한 심정의 의뢰인들로 하여금 친분을 통한 승소 가능성을 내비치는 경우가 많다"며 "연수원 동기가 절친한 판사라는 변호사들도 많은데 하물며 전관 출신 변호사일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 법조인끼리 감싸주는 '온정주의'도 문제

사법연수원 기수를 중심으로 서열화된 기존 법조인들은 '연수원 출신'이라는 동류 집단을 형성하고, 그 집단 의식과 사회 엘리트 층이라는 자부심이 합쳐지며 실제 소송 등에 있어 부정한 비리를 저지르는 사례가 적잖은 게 사실이다.

이런 부패의 고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이유는 무엇일까? 판사 출신 야당 모 국회의원은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법조비리나 청탁의 끈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장 판검사 출신 연수원 교수 지도하에 2년 간 인연을 맺으면서 교수들이 친한 변호사들을 불러 같이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는 게 일상화 돼 있다"며 "법조계 인맥확보라는 서로의 요구가 맞기 때문에 연수원에서부터 여러 관계가 형성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연구원 출신 D변호사는 "현직 판사와 검사들이 법조 브로커로부터 향응을 제공받는 대가로 그들의 청탁을 들어주는 일은 비일비재하다"며 "반면 다른 직업군보다 높은 수준의 청렴성을 요하는 법조인들의 비리에 대한 처벌이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도 많은 등 수위가 낮다는 점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법조인끼리 감싸주는 '온정주의'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D변호사는 또 "적발되는 법조 브로커의 수는 최근 3년 간 증가하는 추세에 있지만 적발되는 숫자보다 적발되지 않은 음지의 브로커들의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브로커와 연계된 변호사들을 적발하고 처벌하는 판·검사들 역시 이들의 연수원 동기 또는 선후배들이다보니 서로의 관계를 위해 눈 감아 주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현재 최유정 변호사와 관련한 재판의 배당 역시 법원 내부에서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법조인이 소송당사자가 된 재판의 경우는 출신 대학이나 출신지, 연수원 기수 등을 최대한 겹치지 않게 해 공정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원과 검찰 내부에서 스스로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 로스쿨, '기수문화 폐단' 해소책 될까

기존 법조계 비리의 근원을 사법연수원을 거쳐 법조인이 배출되게 하는 단일 구조로 보는 시각이 있다. 따라서 다양한 학교에서 교육받고 변호사시험이라는 경쟁을 거쳐 제한적으로 면허를 부여하는 로스쿨 제도에서는 인맥을 동원한 법조비리가 옅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의견도 있다. 입시 불투명성과 고비용 등 로스쿨도 보완이 필요하지만 법조 비리에 있어선 연수원보다는 나을 것이란 시각이다.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된 로스쿨 도입 검토는 사법개혁 일환으로 법조 기득권의 상징인 사법연수원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됐다. 당시에도 기수·서열 중심의 폐쇄적 법조 문화가 법조 비리 근원이란 시각이 많았다. 대법원 산하 사법연수원에서 5급 공무원 대우를 받으며 현직 판검사들로부터 교육을 받는 동안 '특권 의식'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배출된 극소수 법조인끼리의 인맥관리는 더 공고해져 법조비리에 대한 기성 법조인들의 경계심이 의외로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E변호사는 "과거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을 통해 형성된 법조계 내부 비리 등 부패 문제는 이번 최유정 변호사의 사건을 통해 또 한번 드러났다"며 "폐지된 사법시험을 부활시키기 보다는 새로 시행되고 있는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을 통한 법조인 배출 창구에 희망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등 특정 5개 대학 출신들이 독식했던 기존 사법시험 체계와는 달리 로스쿨은 각 지역에 골고루 분포돼 선정된 25개 대학에 설치돼 있다는 점에서 법조계 학연 중심 청탁 문화를 타파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B변호사는 "기존 사법시험 체계에서의 각종 부패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로스쿨 제도를 통해 사법연수원 중심의 법조 카르텔을 깨뜨리고, 이제는 다양한 계층들의 법조계로의 진입을 가능하게 해 법조시장에서 법조인들이 실력에 의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게 함으로써 법조비리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3월2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사법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 '제47기 사법연수생 임명식'에 참석한 조용구 사법연수원장이 식사를 하고 있다. 올해 사법연수원 입소생 연수생 평균나이는 31세로 이는 로스쿨 체제가 정착되며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수험생들이 줄었기 때문이다. /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