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 '문화융성' 동참 기대

박 대통령은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총 4876명에 대한 광복절 특별사면을 의결했다. 중소·영세 상공인, 서민 생계형 사범, 불우 수형자 등이 대부분이었고 정치인은 아예 제외됐다. 경제인 14명도 이름을 올렸지만 대부분 중소기업인으로, 대기업 총수는 이 회장 뿐이었다. 당초 재계에서 사면을 기대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은 결국 배제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특별사면 때에도 올해와 같은 14명의 경제인을 사면해주면서 대기업 총수 중엔 최태원 SK 회장 한명만 명단에 포함시켰다. 

사회지도층에 대한 사면을 자제한다는 박근혜정부의 일관된 원칙이 이번에도 적용된 셈이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대주주나 경영자가 저지른 중대 범죄에 대해선 사면권 행사를 제한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올해 예외적으로 이 회장을 사면·복권한 것은 이 같은 원칙에도 불구하고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게 박 대통령의 판단이었다. 

이 회장에 대한 사면·복권을 계기로 CJ그룹이 박근혜정부의 최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인 '문화융성'에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라는 기대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CJ그룹은 해외에서 K-팝, K-푸드 등의 한류 확산을 주도해왔다. 국내에서도 경기도 고양시에 한류문화복합단지인 K-컬처밸리를 건설하는 등 정부의 문화창조융합밸트 사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 끈끈한 당청관계 과시

인도적 측면도 고려됐다. 이 회장은 현재 근육이 위축되는 희귀 유전병인 '샤르코 마리투스'(CMT)와 만성신부전증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 9일 김현웅 법무부 장관 주재로 열린 사면심사위원회에선 회의 초반 이 회장의 실제 수감기간이 4개월에 불과했다는 점 등에서 사면에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했으나 병세가 위중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결국 사면에 우호적인 쪽으로 분위기가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회장의 경우 형 집행정지 중이긴 하지만 수감생활을 할 경우 생명의 지장까지 초래할 우려가 있어 도저히 수감생활을 할 수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번 특별사면을 통해 긴밀한 당청관계를 과시한 것도 박 대통령으로선 정치적 성과다. 여당 지도부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특별사면을 단행하는 모양새를 취했다는 점에서다. 올해 광복절 특별사면을 처음 제안한 곳부터 새누리당이었다. 지난달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 초청 오찬 당시 정진석 원내대표가 "8.15 특별사면 조치를 하면 국민통합 분위기를 진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건의하자 박 대통령은 "좋은 생각"이라고 화답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광복 71주년을 맞아 국민들의 역량을 모으고 재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사면을 실시하고자 한다"며 특별사면을 전격 지시했다. 11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 오찬 회동에서도 이정현 대표가 "민생·경제 사범들은 반성을 하고 벌을 받은 만큼 다시 한 번 뛸 수 있도록 베풀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통 큰 사면이 있길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고 건의하고 박 대통령이 "참고하겠다"고 답하는 모습이 연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