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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정법원 가사20단독 김성우 판사는 31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에 대한 한정후견을 개시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7월 1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로 들어서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사진=뉴스1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잘 알려진 유진 박에게 성년후견인을 지정해달라는 청구가 접수됐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씨의 이모 A씨는 지난 6월 서울가정법원에 "조카가 우울증과 양극성장애(조울증) 등을 앓고 있어 사무를 제대로 처리할 능력이 없고, 건강 문제로 입원 치료도 앞두고 있어 후견인의 조력이 필요하다"며 "자신과 박씨의 고모를 후견인으로 지정해달라"는 성년후견 개시 심판 청구를 했다.

지난달 31일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 결정이 내려진 데 이어 또다시 유명인에 대한 성년후견신청 소식이 전해지자 성년후견제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 피후견인 재산 함부로 사용하는 후견인도…"후견인에 대한 감독 부실 탓"

'성년후견인 제도'는 장애·질병·노령 등으로 인해 정신적 제약을 가진 사람에 대해 법원이 그 사람(피후견인)의 의사를 대신할만한 후견인을 선임해 그의 재산관리와 일상생활에 관한 폭넓은 보호 및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로써 민법에 도입돼 2013년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과거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제도로 운영됐던 것을 대체하기 위한 제도이기도 한 성년후견인 제도는 특히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대신 관리해주게 되어 있어 피후견인의 재산을 노리고 후견인 지정 신청을 하는 제도 악용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김진우 변호사(법무법인 정향)은 "성년후견제도 하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주로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된 가족이 해당 성인(피성년후견인)의 이익에 반하는 형태로 재산을 사용하거나 매각하는 경우 발생한다"며 "이런 문제는 가정법원에 의해 선임되는 성년후견인의 대다수가 해당 성인의 가족(친족)인 한편, 성년후견인을 감독하는 후견감독인은 법령상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에만 선임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또 "후견인에 대한 감독 부실이라는 제도적인 문제 외에도 근본적으로 해당 성인의 가족이 후견인으로 지정되고 나면, 알아서 잘 하겠거니 생각하는 주위 사람들의 안일한 생각과 무관심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호영 변호사(법무법인 폴라리스) 역시 "피후견인의 재산을 관리해야할 성년후견인이 도리어 피후견인의 재산을 빼돌린 사례가 드물지 않다"며 "일선의 후견감독인원이 후견 신청건수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성년후견인 제도에서 나타나는 폐해는 기본적으로 후견인에 대한 지정이 된 이후 그 지정된 후견인에 대한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피후견인과 그의 재산이 피후견인의 본인의 이익을 온전히 대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법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성년후견인 지정 신청자도 후견인도 대개 '친족'이라서 오히려 문제

신 총괄회장의 경우 1심 법원은 법무법인 원이 설립한 사단법인 선을 후견인으로 지정했다. 2013년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된 이후 법원은 '법인'을 후견인으로 지정한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신 총괄회장에 대한 법인 후견인 지정은 상당히 이례적인 판단이라는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법원은 피후견인의 가족 중 적합한 사람을 선정해 후견인으로 지정한다.

이와 관련해 피후견인의 가족이 후견인으로 선임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오히려 후견 제도가 악용될 수 있는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진우 변호사는 "유진 박씨의 경우 역시 후견인 지정 신청을 한 가족이 후견인으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며 "그의 이모나 고모 등 친족 중에서 후견인이 선임되더라도 계속 주위에서 유진 박씨의 상태와 후견인의 활동에 대해 세심한 관찰을 해야 할 것임은 물론, 경우에 따라 가정법원이 직접 후견 감독인을 선임할 필요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법에 따르면 성년후견인을 지정해달라는 신청은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미성년후견인, 미성년후견감독인, 한정후견인, 한정후견감독인, 특정후견인, 특정후견감독인,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청구할 수 있도록 돼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후견인 신청을 하는 대다수가 피후견인의 배우자나 친족 등이다.

신청을 하는 사람들 중 후견인이 선임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그런 신청을 해 줄 가족이 없는 사람은 방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호영 변호사는 "민법은 성년후견인 지정 신청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피후견인의 친족 외 지자체장과 검사도 규정을 해두고는 있지만 실제 지자체장과 검사가 성년후견신청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이 때문에 후견인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신청을 해 줄 가족이 없고, 본인 스스로가 그런 신청을 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후견인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공공후견 지원 사업을 조속히 확대하고, 아울러 성년후견학회등 민간단체들과의 협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