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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
"군형법에 규정된 각종 범죄나 일반형사법의 내우외환죄를 제외하고 가장 무거운 형벌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죄목이 뇌물죄다. 최저형량만 생각한다면 뇌물죄는 살인죄보다 더 무거운 죄로 간주된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본 검사 출신 한 변호사의 얘기다. 뇌물죄가 적용돼야만 이번 사태에서의 핵심인사들에게 실형을 선고할 수 있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일반의 상식으로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죄에 대한 형벌이 뇌물을 받는 행위(수뢰죄)에 대한 형벌보다 무거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국내법령이 규정하는 형은 그렇지 않다.
◇법정 최저형이 문제되는 이유
형법상 살인죄를 저지른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최고형만 보면 '사형'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최저형을 5년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뇌물죄에 대한 형은 특가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규정돼 있다. 특가법 제2조는 수뢰, 사전수뢰, 제3자 뇌물제공, 수뢰후 부정처사, 사후수뢰 등의 범죄에 대해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일 경우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 징역에 처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즉 뇌물죄의 최저 형량은 10년이라는 얘기다.
법에서 정한 최저형량이 중요한 이유는 형 집행의 실효성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형 집행의 실효성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는 2가지가 있다. 바로 형법상 '작량감경' 제도와 '집행유예' 제도다.
작량감경이란 범죄의 정상(情狀, 사실 그대로의 상태)에 참작할 사유가 있을 때 그 형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사형에 대해 감경이 이뤄지면 무기징역이나 20년~50년의 징역·금고형으로 줄어든다. 무기징역·금고를 감경할 때는 10년~50년형으로 형기가 줄어든다. 형법은 유기징역·금고에 대해서는 형기를 1/2로 줄일 수 있도록 했다. 벌금이나 과료 등을 감경할 때는 그 가액을 1/2로 줄이도록 했다.
집행유예는 3년이하 징역·금고형을 선고할 때 범인의 연령, 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수단·동기·결과, 범행후 정황 등을 참작, 형의 집행을 일정기간 유예하도록 하는 제도다.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징역·금고·구류 등 자유형의 폐해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그런데 작량감경과 이 집행유예 제도가 결합할 때가 문제다.
산술적으로 살인죄를 저지른 이가 법정 최저한도인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때 법관의 재량으로 이 형을 1/2로 줄일 수 있다(작량감경). 즉 5년형을 받은 범인에게 실제 부과되는 형은 2년6개월로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부과되는 형이 2년6개월에 그칠 경우 범인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1억원의 뇌물을 받은 이가 최저형(징역 10년)을 선고받을 경우 온갖 정황을 다 갖다 붙이더라도 줄일 수 있는 형의 최저한도는 5년에 달한다. 형법이 규정한 집행유예 조건(3년 이하 징역·금고)에 맞지 않기 때문에 꼼짝없이 형무소에서 실형을 살아야 한다.
◇뇌물죄 가중처벌 조항, 헌법재판소 판단은
최근의 물가수준을 감안하면 '1억원'이라는 금액은 지난달 말 기준 서울 강남구 재건축 아파트 2.5평(8.25㎡, 3.3㎡당 4000만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1억원 이상'이라는 금액을 넘어선 뇌물을 수수한 이에게 최저 형기(刑期)를 10년으로 규정한 것이 타당하냐는 문제제기도 수차례 있었다.
실제 2008년 초 한 민간회사로부터 청탁을 받고 1억원씩 뇌물을 수수한 공무원들이 "특가법 제2조(뇌물죄의 가중처벌) 조항이 지나치게 무거운 법정형을 규정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일이 있었다. 책임과 형벌간 비례의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이었다.
청구인들은 또 "살인죄의 경우 작량감경을 통해 집행유예가 가능하다"며 "작량감경을 하더라도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는 이 사건 법률조항(뇌물죄 가중처벌 조항)은 현저히 형벌체계상 균형을 잃어 평등원칙에 반하고 법관의 양형에 대한 선택권 및 판단권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011년 6월30일의 판결에서 해당 뇌물죄 가중처벌 조항이 합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뇌물죄가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병폐는 수뢰액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중된다는 점에서 볼 때 수뢰액을 기준으로 한 단계벌 가중처벌은 … 이를 수긍할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또 "수뢰액이 5000만원(당시 문제된 조항은 1990년 개정안이었고 2005년 개정을 통해 10년형 이상을 부과하는 기준이 1억원으로 상향됨) 이상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점, 수뢰액의 상한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서도 그 법정형에 사형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형벌체계상 균형을 잃었다 할 정도로 과중하다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살인죄에 비해서도 과도한 형벌을 규정하고 있다는 청구인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보호법익과 죄질이 다른 둘 또는 그 이상의 범죄를 동일 선상에 놓고 그 중 어느 한 범죄의 법정형을 기준으로 해 단순 평면적 비교로써 다른 범죄의 법정형의 과중을 판정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또 "살인죄의 법정형을 기준으로 해 뇌물죄 가중처벌 조항에서 규정하는 형벌의 경중을 논단할 수 없고 이 점은 사람의 생명이 가장 존귀한 형벌법규의 보호법익이라고 하더라도 결론을 달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는 사람의 생명이 가장 준귀한 형벌법규의 보호법익이라고 하더라도 결론을 달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재판부는 "입법자가 법정형의 책정에 관한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법률 그 자체로 법관에 의한 양형재량의 범위를 좁혀놨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당해 범죄의 보호법익과 죄질에 비춰 범죄와 형벌간 비례원칙상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의 합리성이 있다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뇌물죄 가중처벌 조항이 작량감경을 하더라도 별도의 법률상 감경사유가 없는 한 집행유예 선고를 할 수 없도록 법정형의 하한을 높여놨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법관의 양형결정권을 침해했다거나 법관독립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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