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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혐의자들에게 뇌물죄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지난달 검찰이 국민연금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가 얼마나 상세한지에 따라 박 대통령은 물론 최순실 등 비선실세들, 나아가 기업총수들에 대한 형사소추 가능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뇌물죄' 조항이 중요한 이유
우선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최근 검찰의 공소장에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 등과 공범관계라는 점을 적시하기는 했으나 적용된 죄목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강요죄 등에 국한돼 있다.
뇌물죄가 빠지게 되면 박 대통령은 물론 이번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사들에게 실형을 부과할 수 없다는 우려가 크다. 직권남용이나 권리행사 방해, 강요죄 등에 대한 처벌은 형사법상 5년 이하의 징역까지만 가능하다. 이 경우 작량감경 등을 통해 형이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고 선고형의 집행유예도 나올 수 있다. 형 집행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 뇌물죄가 적용될 경우 혐의가 적용된 이들은 실형을 피할 방법이 사라진다. 특가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억원 이상의 뇌물을 수수한 이에 대해서는 법정 최저형이 10년이기 때문이다. 온갖 감경사유를 갖다 대더라도 법에 의해 5년 이하로 형이 줄어들 수 없다. '3년 이하 징역·금고형'의 경우에만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하도록 한 현행 형사법 규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뇌물죄, 3자뇌물죄의 공통점과 차이점
형법에서 규정한 뇌물수수 관련 대표적인 2개 조항이 바로 형법의 '수뢰죄' 조항과 '제3자 뇌물제공죄' 조항이다. 구체적 내용은 아래와 같다.
형법 제129조(수뢰, 사전수뢰) ①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형법 제130조(제3자 뇌물제공)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 또는 약속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두 조항은 공무원이나 중재인이 직무와 관련해 뇌물을 받거나 요구하거나 약속한 경우에 대해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아울러 두 조항 모두 특가법의 적용을 받는 죄목이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특가법은 수뢰액이 3000만원 미만일 경우에만 형법에 규정된 '5년 이하의 징역'이 적용되고 △3000만~5000만원 미만인 경우 5년 이상의 유기징역 △5000만~1억원 미만인 경우 7년 이상 유기징역 △1억원 이상인 경우 10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두 조항의 차이점도 있다. 뇌물죄는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직무'에 관해 '뇌물을 수수·요구·약속'하는 행위만 있으면 적용될 수 있다. 반면 3자 뇌물죄는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직무'에 관해 '뇌물을 수수·요구·약속'하는 것은 물론 '부정한 청탁'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더해져 있다. '부정한 청탁' 여부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3자 뇌물죄의 적용가능성은 그만큼 낮다.
◇적용가능성은 '3자뇌물죄'가 더 높아
박 대통령 본인에 대해 직접 뇌물죄를 적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국내 굴지 대기업들의 출연금이 최순실에게 흘러들어갔다는 정황은 있지만 최순실 등의 계좌가 박 대통령의 차명계좌라는 게 입증되지 않으면 뇌물죄 적용은 힘들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이 바로 3자뇌물죄 적용이다. 이 혐의를 적용한다면 박 대통령이 본인의 권한을 활용해 최순실 등에게 대기업들의 자금이 흘러가도록 했다는 사실 외에 '부정청탁' 요건까지 갖춰야 한다.
3자뇌물죄를 적용하려면 미르·K스포츠재단 등에 대한 기업들의 자금출연이 특정 대가를 목적으로 부정청탁을 했다는 점이 입증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기업 중 그룹총수가 특별사면되거나 가석방된 회사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여타 기업들보다 더 큰 의혹을 받는 곳은 삼성그룹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출연금 외에도 삼성그룹 측에서 최순실·정유라에게 지원된 금액은 300억원대에 달한다는 관측도 있다. 이를 대가로 최순실 등 국정농단 실세로 지목되는 이들이 정부와 국민연금을 이용해 지난해 합병비율 논란이 일었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성사시킨 게 아니냐는 의혹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국민연금을 동원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성사' 의혹은 여타 기업들이 받은 혜택과 달리 매우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부정청탁' 요건에 부합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역대 정권에서 기업들에 대해 강경한 스탠스를 취하다가 화해국면으로 갈 때 으레 내놓는 카드가 사면, 가석방 등이었다는 점에서 삼성 이외의 기업들의 (최순실씨 등에 대한) 자금출연은 부정한 청탁을 대가로 했다고 간주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반면 삼성그룹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자금출연 외에도 최순실·정유라에 대해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자금지원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며 "사면복권, 가석방 등과 달리 국민연금을 동원해 그룹승계의 핵심고리였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성사시켰다는 것은 다른 기업들이 받은 대가와 달리 매우 이례적인 경우로 부정청탁이 있었을 의혹을 키우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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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검찰이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검찰은 이날 삼성물산 합병 당시 국민연금이 삼성 로비에 찬성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 했다. / 사진=이기범기자 |
◇가장 약한 지점은 '국민연금'?
지난 23일 국민연금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10시간여에 걸쳐 고강도로 이뤄진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과거 여러 정권을 거치며 기업총수에 대한 형사소추를 수차례 겪었던 대기업들에 비해 국민연금은 이번과 같은 사태에 대한 대응능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다. 당초 예상과 달리 10시간 이상의 기록적인 압수수색이 있었던 것도 검찰이 구체적 범죄정황을 인지한 상태에서 증거를 수집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국민연금 압수수색을 통해 얻은 증거에서 청와대의 직접개입 등이 확인될 경우 삼성과 박 대통령, 최순실 등 비선실세들에 대한 3자뇌물죄 적용이 가능해진다. 뇌물죄와 마찬가지로 3자뇌물죄도 대향범, 즉 상대방이 있는 범죄이기 때문에 뇌물을 요구한 측과 직접적으로 받은 측, 뇌물을 공여한 측 모두가 범인으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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