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청사/사진=뉴시스

업무와 관련해 중국어 어학 시험에 응시하거나 극기 훈련을 받는 등 고강도 일정을 소화하다 숨진 30대 공무원 유족에게 순직유족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수석부장판사 이주영)는 한 국가기관 소속으로 일하다 숨진 A씨의 배우자가 "순직유족급여를 주지 않는다고 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핸드볼 선수 출신 A씨는 2008년 부사관으로 임관해 특수전사령부 등에서 근무하다 2019년 8월 전역했다. 같은해 9월 업무 강도가 높은 한 국가기관에 취직했다.

A씨는 입사 2년 후인 2021년 12월14일, 출근길 운전 중 멈춰있던 굴착기 뒷부분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고 심정지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인사혁신처는 2022년 7월 순직유족급여를 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공무상 재해보상법은 출퇴근 재해를 공무상 사고의 한 유형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사고 원인이 근로자의 질병이나 체질적 요인이 아닌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외부 요인 때문에 발생한 경우를 의미한다고 봤다. 그 결과 인사혁신처는 이번 고인의 사망 원인이 추돌 사고가 아닌 그 전에 발생한 급성 심정지 때문이며 이 심정지와 업무 사이의 연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도 A씨가 숨진 원인은 사고가 아니라 심정지 때문이라고 봤다. 차량 속도는 시속 74㎞였는데 사고 직전까지 브레이크를 작동하지 않거나 핸들을 틀지 않는 등 회피한 행위가 없었다는 점 등이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A씨가 숨진 것이 출퇴근 재해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공무수행 과정에서 신체적, 정신적 부담을 주는 업무가 지속돼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 됐거나 이로 인해 기존 질환이 악화돼 심정지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고인은 해당 기관에 근무하면서 해외 위험지역 임무 수행 또는 지원을 위한 훈련과 교육을 받아 왔다"고 했다. 이어 "수시로 체력 측정 평가를 받으며 합격할 때까지 주 단위 평가를 받았고, 특히 업무상 요구되는 어학능력을 위해 외국어 시험에 응시했다"며 "평가 및 시험, 상대적으로 어린 동료들과 경쟁 등으로 상당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밖에 A씨가 과거 운동선수 생활을 하는 등 기초체력이 튼튼했던 점, 개인 질환이 없었던 점, 사망 당시 나이가 만 37세에 불과했던 점 등도 고려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