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법시험 폐지할 것인가' 세미나(김관영 의원 주최)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뉴스1

2015년 12월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대한변호사협회 앞에서 열린 '한국법조인협회 법조화합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대한변호사협회 하창우 회장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내놓은 '전관비리 대책'에 판검사 별도 선발(투트랙 양성시스템) 방인이 포함돼 사실상 사법시험(사시) 존치 주장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법조비리를 막고 법원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사법개혁 차원에서 도입된 '법조일원화'에 대한 성급한 뒤집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변협은 지난 20일 '전관비리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에는 판검사 선발시험과 변호사 자격시험을 아예 분리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장기적으로 시험 자체를 분리해 전관 자체를 없애되 이 방안이 자리잡기 전까지는 검사장급 이상 검사와 고등법원 부장판사급 이상 판사의 개업 금지를 추진하겠다는 복안이다.

"사법개혁 차원 참여정부 도입한 '법조일원화'에 정면 배치돼"

변협이 내놓은 대책은 사회적 합의 끝에 도출한 법조일원화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점이 가장 문제로 꼽힌다. 현재 법관 선발은 예전의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에서의 직접 선발이 아닌 경력 법조인 가운데 뽑는 법조일원화가 자리잡고 있다. 

법조일원화는 판사·검사·변호사 간 벽을 허물어 판검사 선발을 경력 법조인을 대상으로 법조계를 일원화 한다는 게 골자다. 경험 없는 젊은 판검사에 의한 일반 국민 시각과 동떨어진 무리한 수사재판의 폐해나 폐쇄적 엘리트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사법개혁 핵심방안이다.

법조일원화로 풍부한 경력을 가진 변호사들이 판검사에 임용돼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응할 수 있고 법원·검찰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런데 변협의 전관 대책에 들어간 투트랙은 그간의 법조일원화 방향과는 동떨어져 있다.

폐쇄적 법조시스템 폐해를 줄이기 위해 수십년의 연구 끝에 결국 노무현 정부에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를 통해 사회적 합의로 사법개혁 핵심목표로 법조일원화를 도입했는데 이제와서 판검사 시험을 따로 두자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투트랙'…변협이 '사시존치' 대안으로 제시했던 방안

이효은 변협 대변인은 머니투데이 더엘(the L)과의 통화에서 "투트랙이라는 것은 변호사 선발의 투트랙이 아니라 법조인 전체를 투트랙으로 뽑는다는 것"이라며 "다시 말해 변호사 선발시험과 판검사 선발시험으로 나눠진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변인은 사시존치와 연계된 게 아니냐는 질문에 "사법시험 존치로 연결되기는 조금 어렵다고 본다"며 "판검사시험 변호사시험을 아예 분리하겠다는 것으로 판검사가 변호사를 하지 못하게 하는 취지"라 덧붙였다.

이 대변인의 발언은 사시존치와 투트랙 방안이 연관되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이를 보는 법조계 일각의 시각은 다르다. 판검사 선발을 별도 시험으로 한다는 투트랙 발상은 변협 등이 사시존치를 위한 주장의 일환으로 계속 강조했던 대안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 주최로 열린 사시존치 토론회에서는 투트랙 방안이 계속 제기됐다. 김태환 변호사(당시 대한변협 법조인양성제도개혁특위 부위원장)은 지난해 8월 토론회에서 "사시를 존치시켜 변호사 양성과정과 판검사 양성과정을 이원화하자"고 주장했다. 김용섭 전북대 교수는 지난해 7월 서울지방변호사회 주최 토론회에서 "가칭 '신사법고시'나 '국립사법원'을 만드는 제3의 대안을 모색할 때"라며 "로스쿨 단점을 보완할 방법으로 예비시험이나 사시존치가 아닌 새로운 제도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의 제안도 판검사를 별도로 뽑자는 것으로 변협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사시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선 변협 등 사시존치를 위해 활동하던 단체들이 찾은 새로운 명분이 '판검사 선발시험'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소년 등과, 낭인 문제 등 사시 폐해 그대로 답습할 것"

특히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투트랙으로 법조인을 양성하면 사시존치와 다를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변협의 투트랙 주장은 사시를 '판검사 임용'시험으로 격상시켜 유지하겠다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 단체인 한국법조인협회(한법협)는 성명서를 통해 "투트랙 대책은 오히려 판사와 검사를 같은 시험을 통해 선발해 특권적 권위주의 문화를 강화하는 것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오히려 법조일원화를 통해 판사는 10년 이상의 변호사 경험이 있는 자를 위주로 명예직과 같이 선발해 실질적으로 의뢰인에게 공평한 판결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검사를 별도로 뽑는다면 결국 '소년 등과' 문제 등 과거 사시에서 나왔던 문제를 반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전관비리의 근본 원인은 사법연수원 기수 서열 문화의 폐해와 전직 판·검사에 대한 불합리한 예우에 있는 만큼 대책도 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전관예우 등 불합리한 이익을 받는 자를 엄중히 처벌하는 방식으로 근절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법원에 "법조일원화 지키라"던 변협 기존 입장과도 전혀 달라…혼선 가중

김정욱 한법협 회장은 "법조일원화를 통해 10년차 이상 법조인만 판사로 지원할 수 있게 됐는데 변협 제안처럼 투트랙으로 바꾼다면 이는 결국 젊은 엘리트출신 판사들의 명맥을 유지시키는 것 뿐"이라며 "장기적으로 전관예우 문제는 변호사로 오래 일하던 사람들이 판검사로 가서 공익을 위해 헌신하게 되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변협의 이번 '투트랙 카드' 끼워넣기가 현 변협회장의 임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사시존치 공약을 내건 하창우 협회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로, 올해 안에 사시존치 공약을 마무리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 몰려 있다는 얘기다. 하 협회장과 변협은 그간 법조일원화를 제대로 이행하라며 사법부를 비판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