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인 문제를 차치하고 형법상으로 자살 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물론, 자살을 하려다 실패한 사람 역시 처벌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자살에 이르게 하거나 다른 사람의 자살 시도를 도와준 사람까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와 관련해 아내의 자살 행위를 용이하게 해 목숨을 끊게 만든 남편에 대해 '자살방조죄'가 성립하는지가 문제됐던 대법원 판례(2010도2328)가 있다.

부부인 A씨(男)과 B씨(女)는 자녀문제와, 고부갈등, 경제적 어려움 문제로 인해 사이가 좋지 않았다. 새벽녘에도 이들 부부는 어김없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B씨는 남편에게 “죽고 싶다, 같이 죽자”며 기름을 사오라는 말을 했고, 그 말에 A씨는 휘발유 1병을 사다줬다.

휘발유를 받아 든 B씨는 곧바로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붙여 자살했다.

검찰은 A씨가 아내 B씨에게 휘발유를 사다줌으로써 그녀를 자살에 이르게 한 것이라며 그를 형법상 자살방조죄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아내가 홧김에 한 말이라고 생각했지 정말 자살을 할 줄은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형법 제252조 제2항의 자살방조죄는 자살하려는 사람의 자살행위를 도와 용이하게 자살을 실행하도록 할 때 성립되는 것"이라며, "자살방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방조 상대방의 구체적인 자살의 실행을 원조해 이를 용이하게 하는 행위의 존재와 그 점에 대해 행위자가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비록 결과적으로는 자살하려는 사람의 자살행위를 도운 것이 되더라도, 그 사람이 자살하려는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거나 자신의 행위가 자살 실행을 용이하게 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자살방조죄의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기본 입장이다.

이런 법리에 따라 재판부는 "B씨는 자녀문제와 고부갈등,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남편 A씨와의 사이 불화가 있던 상태"라며 "A씨는 죽겠다며 휘발유를 사오라고 말한 B씨에게 이를 사다주면 그것을 이용해 자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A씨는 자살하려는 B씨의 의사와 자신이 휘발유를 사다 준 행위의 의미를 알면서도 자살을 도운 사실이 인정돼 대법원에서 자살방조죄 유죄를 선고 받았다.

◇ 판결 팁 = 우리 형법에는 '자살죄'는 없지만, '자살 교사·방조죄'라는 자살관여죄에 대한 규정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범죄의 실행을 마음먹게 해 죄를 범하게 한 교사범이나 다른 사람의 범죄 실행을 용이하게 도운 방조범은 실제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인 정범의 행위가 범죄가 될 때 처벌된다. 하지만 자살관여죄의 경우는 정범이 처벌되지 않음에도 교사·방조자만이 처벌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교사·방조죄의 경우와 다르다.

자살 행위는 미수도 죄가 되지 않기 때문에 형법은 일반적인 교사·방조죄(형법 제31조, 제32조)의 경우와 달리 '자살 교사·방조죄'를 독립된 죄로 별도의 규정(형법 제252조 제2항)을 두어 처벌하는 것이다.

◇ 관련 조항

- 형법

제252조(촉탁, 승낙에 의한 살인 등) ② 사람을 교사 또는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